Vangelis - VOICES
이제 전반전 끝나고 쉬는 시간일까요? 올 여름 장마는 유독 길고 습하게 느껴집니다마는
해마다 이렇게 비가 많은 계절이면 꺼내어 걸어보게되는 음반이 한 장 있습니다.

반젤리스 본인의 작업으로나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나 예스 보컬 존 앤더슨과의 협업으로나
불꽃같았던 80년대를 보내고 90년대 중반에 이르면 이제 전성기가 지났다는 느낌이었습니다.
"1492 콜럼버스"는 테마곡만을 남긴채 망했고, "Direct"에 이은 "The City"의 신스록 음악은
여전히 흥미로웠으되 다분히 구식이라는 인상이었죠. 그러던 1995년 "Voices"가 나왔습니다.
"Voices"에서 가장 널리(어쩌면 유일하게) 알려진 트랙이라면 반젤리스 특유의 웅장한 합창이
주도하는 동명의 타이틀곡이겠으나 앨범 전체를 놓고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이질적입니다.
같은 주제를 다음곡 'Echoes'에서 방향을 틀어 반복한 뒤 그로부터 가지가 뻗어나가고 있죠.
제목은 '목소리'라고 붙여졌을망정 온통 리버브의 잔향으로 채워진 물기 가득한 사운드는
안개로 뒤덮인 숲,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조용히 비가 내리는 바다 등등을 떠올리게 합니다.
반젤리스 답지않게(?) 세 명이나 참여한 보컬곡 중에서 싱글 커트된건 스티나 노덴스탐의
'Ask the mountain'이었지만 저는 나이먹은 폴 영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웠더랬습니다.
듣기 무난한 앰비언트 풍인데다 피처링도 셋이나 되는 등 반젤리스 입문용으로 괜찮아보여
당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로 많이 뿌렸고, 제2의 전성기가 오는가 이후의 행보를 주목했으나
대놓고 바다를 표방한 다음 앨범 "Oceanic"은 너무 많이 갔고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에겐 음악 외적으로 중요했던 "El Greco"나 우주 탐사를 배경으로 한 앨범들이 있었지만요.

젊어서 록스타였고 중년에는 영화 음악가였으며 노년에는 음악가이면서 화가이기도 했던
에반겔로스 오디세아스 파파사나시우(Ευάγγελος Οδυσσέας Παπαθανασίου)가
2022년 5월 17일 별들의 세계로 떠났습니다.
아무래도 미뤄두었던 "블레이드 러너" 2019-2049 이어보기를 조만간 해야할 모양입니다.